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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근대 무신론의 등장 —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이 신 개념을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by Zenith12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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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철학 · 사상사 심층 분석

근대 무신론의 등장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이 신 개념을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이신론에서 무신론으로, 신앙에서 이성으로 — 17~18세기 유럽 사상 혁명의 전모를 추적한다

01

들어가며 — '신의 죽음' 이전의 세계

17세기 이전 유럽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학문적 이견이 아니었다. 그것은 화형대에 오를 수 있는 죄였고, 사회적 추방을 의미했다. 중세 기독교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결합하여 우주의 모든 현상을 신의 섭리로 설명하는 정합적 세계관을 완성했다. 하늘이 움직이는 것도, 병이 드는 것도, 왕이 통치하는 것도 — 모두 신의 뜻이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과학혁명, 그리고 17~18세기를 풍미한 계몽주의는 이 세계관의 근간을 흔들었다. 자연을 신의 언어가 아니라 수학과 물리 법칙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신은 우주의 주인에서 점차 "시계를 만들고 물러난 시계공"으로, 그리고 급기야 "불필요한 가설"로 밀려나게 된다.

"무신론에 대한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근대 무신론은 단순한 신앙의 부재가 아니라, 이성과 과학이라는 새로운 인식 도구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이 글에서는 과학혁명에서 계몽주의를 거쳐 근대 무신론이 공개적으로 선언되기까지의 과정을, 핵심 사상가들의 논거와 함께 추적한다. 단순한 역사 나열이 아니라, 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는지를 사상의 내부 논리에서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02

과학혁명이 흔든 신의 자리

근대 무신론의 씨앗은 과학혁명에서 싹텄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지동설을 발표하기 이전까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이는 곧 인간이 신의 창조 중심에 있다는 신학적 주장과 맞닿아 있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지구를 우주의 수많은 행성 중 하나로 격하시켰고, 이것은 단순한 천문학적 수정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지각변동이었다.

갈릴레이 —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고 태양의 흑점을 관측함으로써 천상계도 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자연이라는 책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고 선언했다. 신의 계시가 아닌 수학적 탐구가 진리의 통로라는 이 선언은, 성경 중심의 세계 해석을 정면으로 도전했다. 결국 그는 이단으로 재판받아 가택연금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방법론은 유럽 지성계에 폭풍처럼 퍼져나갔다.

뉴턴 — 만유인력과 '시계공 신'의 탄생

아이작 뉴턴(1643~1727)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1687)는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현상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했다. 이 위대한 통합은 역설적으로 신의 위치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주가 스스로 법칙에 따라 운행된다면, 매 순간 신이 개입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뉴턴 자신은 독실한 신자였고 "신이 태초에 우주를 설계하고 법칙을 부여했다"는 이신론적 입장을 취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신 없이도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1543)

지구를 우주 중심에서 끌어내려 인간 중심주의의 신학적 근거를 약화시킴. "신의 창조물 중심"이라는 지위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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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실험적 방법 (17세기 초)

자연을 수학적·실험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성경 해석 대신 관측과 이성을 진리의 기준으로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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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1687)

우주가 자기완결적 법칙 체계로 작동함을 증명. "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우주는 돌아간다"는 인식을 낳음.

🧬

해부학·의학의 발전

인체를 영혼이 아닌 기계적 구조로 설명하기 시작.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신체관이 대표적 사례.


03

계몽주의와 이성의 반란

17세기 말부터 18세기를 휩쓴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하자"는 사상 운동이다. 아이작 뉴턴, 바뤼흐 스피노자, 데이비드 흄, 존 로크,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 임마누엘 칸트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참여한 이 운동은, 중세 신학적 권위에 맞서 이성·관용·자율·인권을 새로운 깃발로 세웠다.

계몽주의자들을 이전 시대와 구분 짓는 핵심은, 갈릴레오와 뉴턴이 추동한 물리학 혁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학적 지식의 진보라는 관념에 매료되었고, 이를 인류 역사 전체의 연속적 진보로 확장시켰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진보를 확신하는 세계관"이 계몽주의의 핵심이었다.

볼테르 — 종교적 관용과 교회 비판의 선봉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즉 볼테르(1694~1778)는 계몽주의의 가장 날카로운 혀였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광신주의를 "혐오스러운 것을 분쇄하라(Écrasez l'infâme)!"는 말로 공격했다. 볼테르 자신은 신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지만 — 이신론자에 가까웠다 — 그의 종교 비판은 무신론적 사유의 확산에 결정적인 토양을 제공했다.

드니 디드로 — 《백과전서》와 무신론적 유물론

드니 디드로(1713~1784)는 《백과전서(Encyclopédie)》의 편집자로서 인간 지식의 총체를 신학 없이 편찬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저서 《맹인 서간》을 통해 사실상 무신론적 유물론을 표명했고, 이로 인해 투옥되었다. 그의 저서들은 금서로 지정되어 불태워졌지만, 사상의 불꽃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데이비드 흄 — 종교의 철학적 해부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종교의 자연사》와 사후 출판된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를 통해 신의 존재 증명, 기적, 섭리론을 철학적으로 해부했다. 그는 설계논증(신이 우주를 설계했다는 주장)의 약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인과율에 대한 회의주의를 통해 신학적 추론의 근거를 허물었다. 흄의 작업은 이후 근대 무신론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계몽주의는 절대 왕정과 강력했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절대 진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계몽사상가들은 그러한 권위의 원천들을 부정하고 대신 그 자리에 이성과 자유로운 탐구라는 새로운 깃발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근대의 사상》

04

이신론 — 신앙과 이성 사이의 타협

무신론으로 곧장 가기 전에, 유럽 지식인들이 거쳐야 했던 중간 기착지가 있었다. 바로 이신론(Deism, 理神論)이다. 이신론은 신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 그 운행에 직접 간섭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도에 응답하는 인격신도 아니고, 기적을 일으키는 초자연적 존재도 아닌, 오직 우주의 법칙을 설계하고 물러선 "시계공 신"이다.

이신론의 핵심 명제: "신은 우주라는 시계를 만들었지만, 이후 시계는 스스로 돌아간다. 신은 더 이상 태엽을 감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 계시·기적·성경의 절대적 권위는 모두 의심의 대상이 된다.

30년 전쟁이 낳은 이신론의 수요

17세기 초에 발생한 30년 전쟁(1618~1648)은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처참한 종교 전쟁이었다. 유럽 지식인들은 교리적 분쟁을 종식할 수 있는 보편적 종교를 갈망하게 되었고, 그 답으로 떠오른 것이 이신론이었다. 계시와 신앙이 아닌 이성과 경험에 기반한 이신론은 종교적 분쟁을 초월할 수 있는 이상적 대안으로 간주되었다.

이신론의 대표적 인물들

영국의 존 로크, 존 톨런드, 매튜 틴들로부터 프랑스의 볼테르, 루소, 디드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계몽주의자들이 이신론적 입장을 취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다수, 즉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등도 이신론자로 알려져 있다. 토머스 제퍼슨은 그리스도의 기적 전승을 "천박한 속임수"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신론에서 무신론으로

이신론은 논리적으로 무신론의 관문이었다. 신이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신의 존재를 상정할 이유는 무엇인가? 자연주의·계몽주의·이성주의에 입각한 이신론은 결국 현대 무신론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매튜 틴달의 저서 《기독교는 창조처럼 오래되었다》(1730)는 이성이 성경보다 먼저 창조되었음을 주장하며 이신론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05

근대 무신론의 공개 선언

1770년대까지도 무신론은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에서 금기였다. 그 누구도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마침내 누군가가 공개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섰다.

장 메슬리에 — 최초의 근대 무신론 저작

프랑스 가톨릭 사제 장 메슬리에(1664~1729)는 평생 동안 사제의 삶을 살았지만, 사후 발견된 방대한 철학 논문에서 신의 존재, 영혼, 기적, 신학 전체를 전면 부정했다. 철학자 미셸 옹프레이는 메슬리에의 작업이 "진정한 무신론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고 평가했다. 그는 살아서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죽음 이후 역사에 큰 균열을 낳았다.

앙리 돌바크 — 최초의 공개 무신론자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1723~1789)는 1770년 저서 《자연의 체계(Système de la Nature)》를 통해 고전 시대 이래 최초로 신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고 무신론자임을 자처한 인물이다. 그는 드니 디드로, 장 자크 루소,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벤저민 프랭클린을 포함한 당대 파리 지식인층의 핵심 멤버였다.

"모든 어린이들은 무신론자로 태어나며, 그들은 신에 대한 개념이 없다." — 폴 앙리 돌바크, 1772년

돌바크의 주장은 신이 없는 것이 자연적 상태이며, 신에 대한 믿음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는 급진적 테제였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데이비드 흄의 철학적 기여

영국의 토마스 홉스도 무신론자라는 죄목으로 고발되었고, 퍼시 비시 셸리는 《무신론의 필요성》(1811)을 익명으로 출간했다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퇴학당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몇몇 서유럽 국가에서 무신론이 정치 속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며, 이성숭배 운동이 일부 프랑스 교회를 이성주의 신전으로 개조하기에 이르렀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 — 지동설 발표

우주 중심에서 지구를 끌어내려, 인간 중심 신학의 우주론적 근거를 흔들기 시작.

1687년

뉴턴 — 《프린키피아》 출판

우주가 수학적 법칙으로 자기 운행함을 증명. 이신론적 '시계공 신'의 개념을 낳음.

1729년(사후)

장 메슬리 — 근대 최초 무신론 논문 공개

사제가 평생 감춰온 철학 논문에서 신·기적·신학을 전면 부정. 무신론 역사의 기점.

1751~1772년

디드로 — 《백과전서》 편찬

신학 없이 인간 지식을 총체적으로 편찬. 이성 중심 세계관의 집대성.

1770년

돌바크 — 《자연의 체계》 출판

공개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한 최초의 근대 저작. 무신론의 공개 선언.

1789년

프랑스 혁명 — 무신론의 정치화

이성숭배 운동, 교회 폐쇄, 탈종교화 정책이 무신론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킴.

1859년

다윈 — 《종의 기원》 출판

생명의 다양성을 신의 창조 없이 설명. 과학적 무신론의 결정적 근거를 제공.


06

핵심 사상가 비교 — 신에 대한 입장

계몽주의 시대 핵심 사상가들의 신 개념에 대한 입장을 비교해보면, 유신론→이신론→무신론으로의 사상적 스펙트럼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상가 생몰년 신에 대한 입장 핵심 논거
아이작 뉴턴 1643~1727 이신론적 유신론 우주 법칙의 설계자로서 신을 인정, 이후 불간섭
존 로크 1632~1704 이신론 이성과 계시의 일치, 자연 종교 인정
볼테르 1694~1778 이신론 교회 부패·광신 비판, 신의 존재는 인정
바뤼흐 스피노자 1632~1677 범신론 (사실상 무신론 논쟁) 신=자연, 인격신 부정, 유대교 파문
데이비드 흄 1711~1776 불가지론/회의주의 설계논증·기적 논증 해체, 종교의 심리적 기원 분석
드니 디드로 1713~1784 무신론적 유물론 물질이 유일 실재, 신 개념은 불필요한 가설
장 메슬리에 1664~1729 무신론 신·기적·영혼 전면 부정, 종교는 지배 도구
앙리 돌바크 1723~1789 강경 무신론 신 존재 공개 부정, 유물론적 세계관 체계화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도덕 신학 이론이성으로 신 증명 불가, 실천이성(도덕)의 신 요청

07

신 개념의 변화 — 창조주에서 가설로

과학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며 서구 사회에서 신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단계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중세의 신 — 전능한 군주

세상 모든 일에 직접 개입하는 인격신. 기적을 행하고, 기도에 응답하며, 역사를 주관하는 최고 주권자.

⚙️

이신론의 신 — 시계공

우주를 설계하고 물러난 신. 법칙을 부여했지만 이후 개입하지 않음. 기도나 기적은 이 신과 무관.

불가지론의 신 — 알 수 없는 존재

인간 이성으로는 신의 존재를 증명도 부정도 할 수 없다는 입장. 흄·칸트가 대표적.

🚫

무신론의 신 — 불필요한 가설

"신 없이도 우주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 신은 과학 앞에서 불필요한 가설에 불과하다."

라플라스의 일화 — "그 가설은 필요 없습니다"

19세기 초 프랑스 수학자·천문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자신의 천체역학 저서를 나폴레옹에게 헌정했다. 나폴레옹이 "이 책에는 왜 신이 등장하지 않는가?"라고 묻자, 라플라스는 "폐하, 저는 그 가설이 필요 없었습니다(Je n'avais pas besoin de cette hypothèse-là)"라고 답했다. 이 일화는 과학이 신을 우주 설명의 필수 요소에서 제거한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핵심 전환점: 신은 더 이상 설명의 출발점(모든 것을 창조한 존재)이 아니라, 설명되어야 할 대상 혹은 설명에 불필요한 잉여 가설이 되었다. 이것이 근대 무신론이 가져온 인식론적 혁명이다.

08

19세기 이후 무신론의 전개 — 마르크스·니체·다윈의 합류

18세기 계몽주의가 무신론의 씨앗을 뿌렸다면, 19세기는 그것이 만개한 시대였다. 세 명의 거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무신론을 사상적·과학적으로 완성했다.

찰스 다윈 — 창조 없는 생명의 역사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은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신의 창조 없이 자연선택으로 설명했다. 이는 이신론의 마지막 보루인 "생명 설계자로서의 신"마저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다윈 이후 과학적 무신론은 더 이상 신학적 담론 없이도 우주와 생명 전체를 설명하는 완결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칼 마르크스 — 종교는 민중의 아편

칼 마르크스(1818~1883)는 종교를 경제적 착취 구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분석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종교를 사회 구조적 현상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신의 존재에 대한 논의 자체를 역사적 상부구조의 문제로 해소해버렸다.

프리드리히 니체 —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선언은 단순한 무신론 주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 서구 문화 전체가 기독교적 신 개념으로 지탱되어 왔으며, 계몽주의 이후 그 기반이 무너졌다는 문화적 진단이었다. 니체는 오히려 신의 죽음이 가져오는 허무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며,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촉구했다.


09

결론 — 무신론은 어디서 왔는가

근대 무신론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흔들고, 갈릴레이의 실험이 파고들고, 뉴턴의 법칙이 완성한 새로운 세계 이해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손에서 신학적 권위에 대한 철학적 도전으로 변환되었다. 이신론이라는 중간 기착지를 거쳐, 돌바크와 메슬리에가 마침내 신의 존재 자체를 정면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 과정은 단순히 "믿음에서 불신으로"의 전환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 방식이 바뀐 인식론적 혁명이었다. 자연을 신의 언어가 아닌 수학과 물리 법칙으로 읽는 패러다임이 확립되면서, 신의 역할은 점점 좁아졌고 결국 불필요한 가설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약 2.3%가 무신론자, 11.9%가 불가지론자로 집계된다.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무신론은 이미 주류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그 뿌리를 추적하면 결국 17세기의 망원경과 18세기의 철학 살롱, 그리고 금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용감한 사상가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핵심 요약 — 근대 무신론 등장의 5단계

계몽주의와 과학혁명이 신 개념에 미친 영향을 5단계로 정리합니다.

  • 1단계 (16세기) —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인간 중심 우주론 붕괴, 신학적 세계관의 물리적 기반 약화
  • 2단계 (17세기) — 갈릴레이·뉴턴: 자연이 수학적 법칙으로 자기 운행함을 증명. 신의 직접 개입 불필요
  • 3단계 (17~18세기) — 이신론의 등장: '시계공 신'으로 후퇴. 기적·계시·성경 권위에 대한 이성적 의심 확산
  • 4단계 (18세기 후반) — 계몽주의 무신론 공개 선언: 돌바크·메슬리에·디드로가 신의 존재 자체를 공개 부정
  • 5단계 (19세기) — 다윈·마르크스·니체: 과학적·사회적·철학적으로 무신론을 완성. "신은 불필요한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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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학술 및 교양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용된 사료는 위키백과, 브리태니커 등 공신력 있는 출처를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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